모두의 전기차 시대가 온다? 보급형 전기차 알기

나도 한번 타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이한 탈 것'이었던 전기차는 이제 세계 신차 판매량의 16%를 차지하며 점유율을 점차 늘리는 추세이죠. 여러 자동차 회사들은 가까운 시일 내로 내연기관 생산을 멈추고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을 하며 전동화된 미래(Electricified Future)를 앞당기고 있죠.
여전히 비싼 중형급 전기차가 시장의 주류입니다. ⓒ 현대자동차
하지만 전기차 보급에 크나큰 걸림돌이 있으니, 바로 가격입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모든 전기차 모델 평균 가격은 6만 1,488달러(약 8,200만 원)이었습니다. 내연기관차의 평균 가격인 4만 9,507달러(약 6,600만 원)보다 1,600만 원이나 비쌌죠.
고가의 럭셔리 카나 스포츠카가 거의 모두 내연기관차인 반면 전기차는 중형이나 준중형급이 대다수인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전기차 값은 매우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도 비싼 전기차만을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보급형 전기차를 팔아 전기차 생산 규모를 늘리면 규모의 경제 효과로 전기차 가격을 내리는 선순환이 가능하죠.
또 환경적 측면에서도 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저가 모델들이 전동화돼야 진정한 탄소 감축이 가능하고, 신흥 시장에서도 전기차의 비중을 늘릴 수 있는데요. 진정한 의미의 전동화 시대를 열어줄 보급형 전기차, 어디까지 왔을까요?

왜 보급형 전기차는 만들기 어려울까?

현재 전기차 시장의 주류는 준중형-중형급 모델이고,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가 보다 크고 럭셔리한 고급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회사들이 보다 저렴하고 부담 없는 전기차 개발을 미루고 있는 걸까요?
비싸고 무거운 배터리의 성능 향상과 가격 인하는 보급형 전기차 개발의 핵심 요건입니다. ⓒ Volkswagen
전기차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무거운 부품은 배터리입니다. 배터리 팩은 수백 kg에 달하고, 가격도 1,000만 원이 넘죠. 때문에 작고 저렴한 차를 만들기 위해 배터리 크기를 줄이면 주행거리가 줄어들어 상품성이 떨어지고, 그럼에도 값은 동급의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성능과 가격 측면에서 내연기관차와 경쟁할 수 있는 적절한 타협점이 바로 현재 시장의 주류인 준중형-중형급이 되는 것이죠.
다행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급형 전기차 개발도 수월해지고 있습니다.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면서 작은 배터리로 더 멀리 갈 수 있고, 배터리 자체의 값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또 주행거리가 조금 짧아도 빠른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가 더 많이 설치되면서 운행 상의 불편함도 줄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환경적 변화에 발맞춰 제조사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보급형 전기차 시장

'보급형'의 기준이 다소 모호하지만, 비교적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3,000만 원대 이하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면, 보급형 전기차 생산에 있어 가장 앞선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압도적인 가성비를 내세워 세계 시장으로 진출 중입니다. ⓒ BYD
'500만 원대 전기차'로 유명했던 우링 홍광 미니 EV를 비롯한 초소형 전기차부터 1,500만 원대를 선언한 BYD 씨걸(Seagul), 장성기차 오라 R1(Ora R1) 등,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하고 저렴함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중국산 전기차들은 중국 내수는 물론이고 유럽, 미국 시장에서도 공세를 펼치고 있는데요.
다른 나라의 자동차 회사들도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소형차 개발 경험이 풍부한 유럽 회사들이 앞다퉈 '2만 유로대(약 2,700만 원대) 전기차' 개발에 나섰는데요. 폭스바겐, 르노, 스텔란티스 등이 1~2년 내로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을 리드 중인 테슬라 역시도 저가형 모델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계속 전해지는데요. 모델 3나 모델 Y보다 작은 컴팩트 해치백 스타일의 신차는 이미 해외에서 위장막을 두른 테스트카의 모습으로 포착된 적이 있죠.
이 밖에도 우리나라, 일본 등 각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저렴한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5,000만 원 대의 중형 전기차 시장에서 이어지던 제조사들의 경쟁은 곧 저가형 전기차 시장으로 옮겨갈 전망입니다.

출시를 앞둔 전기차와 앞으로의 전망은?

그렇다면 출시가 확정된 전기차는 무엇이 있을까요? 국내 출시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모델을 추려봤습니다.
기아 레이 EV는 출시되었고 캐스퍼 역시 보급형 전기차 버전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사진은 내연기관 레이. ⓒ기아
국산 브랜드인 기아에서는 발 빠르게 레이의 전기차 버전을 내놓았고, 현대자동차도 경차인 캐스퍼의 전기차 버전을 준비 중입니다. 이미 출시된 레이 EV는 87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며 1회 충전으로 200km 이상을 달린다고 하죠.
과거 2011년 출시됐던 레이 EV가 100km 남짓을 달렸던 것과 비교하면 12년 사이에 주행거리가 2배가량 늘어난 것이죠. 캐스퍼 전기차도 비슷한 성능을 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조금 지급 전 2,000만 원대 초반을 목표로 합니다.
르노의 전기차, 르노 5. 클래식 르노 5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년 출시됩니다. ⓒ Renault
르노는 2024년 소형 전기차 '르노 5'를 공개할 예정인데요. 보조금 없이 2만~3만 유로(약 2,700만 ~ 4,000만 원)에 400km 이상을 주행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클래식 르노 5의 디자인 요소가 반영된 레트로한 디자인에 저렴한 가격, 긴 주행거리로 유럽의 대중 전기차 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르노코리아를 통해 수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폭스바겐 ID.Life 콘셉트(왼쪽)와 ID.2all 콘셉트. 둘 다 긴 주행거리와 저렴함을 내세웁니다. ⓒ Volkswagen
폭스바겐은 두 종류의 보급형 전기차를 준비 중인데요. 하나는 ID.Life 콘셉트로 공개된 2만 유로(약 2,700만 원) 이하의 엔트리 전기차, 또 하나는 2만 5,000유로(약 3,600만 원)대 에서 시작하는 프리미엄 소형 전기차 ID.2all 입니다. 두 모델 모두 1회 충전으로 400km 이상을 달릴 수 있는 긴 주행거리를 지닐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에서 테스트 중 포착된 테슬라의 보급형 모델. 마쯔다 플랫폼을 공유하며, 400km 이상 주행을 목표로 합니다. ⓒ Electrek
테슬라의 막내가 될 보급형 모델은 '모델 2' 또는 '모델 Q'라는 가칭으로 불립니다. 컴팩트한 해치백이나 크로스오버의 형태가 예상되며, 시작은 2만 2,000달러(약 2,900만 원) 정도로 점쳐집니다. 테슬라의 경우 이미 세계 각지의 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이 보급형 모델이 성공한다면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입지를 공고해질 전망입니다.
보급형 전기차는 단순히 "누구나 살 수 있는 전기차"라는 관점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보다 저렴한 전기차를 대량생산해 전체 전기차의 값의 부담이 덜어지고 제조사의 수익성이 향상돼야 보조금에 의존하는 현재의 전기차 시장 구조를 타파하고 진정한 전기차 보급과 전동화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도 보급형 전기차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보급형 전기차의 등장은 "전기차가 저렴해진다"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Opel
다만 자동차 시장이 갈수록 고급화, 대형화 추세를 따르면서 상대적으로 작고 편의사양도 부족한 저가형 전기차가 단순히 가격 경쟁력 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보급형 전기차 출시에 따라ㄹ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가 병행돼야 하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하고요.
보급형 전기차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건, 여전히 낯선 문물인 전기차를 하루빨리 부담 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죠? 여러분은 어떤 보급형 전기차를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필진 엘제이
자동차 전문기자 출신 콘텐츠 에디터. 전기 자동차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