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전기차만큼 주목받는 전기차 화재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매섭습니다. 2022년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전기차 등록대수는 29만 8,000대로 전기차 30만 대 시대에 들어섰고, 신규 등록만 놓고 보자면 지난 2분기 4만 1,000여 대가 등록돼 전체 신규 등록 대수의 9.5%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죠.
이처럼 전기차가 우리 생활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지만, 동시에 낯선 전기차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도 번지고 있어요. 바로 전기차 화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기차가 화재에 취약하고 한번 불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해 큰 피해를 일으킨다는 괴담이 번지고 있어요. 특히 화재 사고가 날 때마다 자극적인 키워드가 언론을 뒤덮으면서 전기차에 입문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죠. 화재 사고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막연한 공포감을 갖는 것도 지양해야 합니다.
전기차 화재, 과연 정말로 대책이 없는 것일까요? 오늘은 전기차 화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전기차 화재의 주원인은 ‘배터리’
전기차 화재의 주원인은 배터리 불량이나 파손입니다. 내연기관차의 성능을 결정짓는 것이 엔진이라면, 전기차 성능을 판가름하는 핵심 부품은 바로 배터리입니다.
때문에 무게와 부피, 에너지 밀도, 충·방전 속도 등 여러 면에서 우수한 성능을 지닌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 제조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한편, 엄청난 전기 에너지를 품고 있는 배터리는 전기차 화재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불이 붙거나 터지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여러 개의 배터리 셀로 구성된 배터리 팩은 화재에 대비해 설계되고 있기 때문이죠.
고강도 하우징으로 둘러싸인 배터리를 볼 수 있습니다. ⓒ 테슬라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전기차의 배터리 팩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사고에 손상되지 않도록 고강도 하우징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설령 하우징이 파손되더라도 내부의 방화벽과 배터리 셀의 안전장치가 내장돼 있어 큰 불로 번지거나 폭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또한 전기차의 배터리 종류에 따라서도 화재 위험성이 달라요. 리튬이온배터리는 구조적으로 열폭주 thermal runaway 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리튬이온배터리의 일종인 리튬인산철 배터리와 니켈 수소 배터리는 화재 우려가 낮은 편이에요.
전기차 화재, 괴담이 사실일까요?
인터넷 커뮤니티나 언론의 보도를 통해 갑자기 폭발하거나 꺼지지 않는 불길에 휩싸인 전기차를 한 번씩 본 적이 있을 텐데요, 이 때문인지 “3초 만에 폭발한다”느니, “72시간 동안 꺼지지 않는다”느니 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전기차 화재, 정말 그렇게 위험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통계적으로 전기차의 화재 가능성도 그렇게 높지 않아요.
미연방 교통안전 위원회(NTSB)의 통계에 따르면 전기차의 화재 발생 빈도는 가솔린차의 1/60 수준이에요.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차량 10만 대 당 화재 건수 중 가솔린차가 1,529.9대, 하이브리드차가 3,474.5대인 반면, 전기차는 25.1대에 불과합니다. 전기차가 상대적으로 오래된 차량이 없고 운행 환경 등의 변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화재 가능성이 현저히 낮죠.
또한 화재 발생 시에도 순간적으로 배터리 팩이 폭발하거나 삽시간에 차 전체로 불이 옮겨붙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이는 배터리 팩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거나 여러 개의 배터리 셀이 동시에 손상될 정도로 강한 충격이 가해져야만 가능한 일이죠. 이런 예외적인 상황에 큰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건 내연기관차도 마찬가지이므로, 전기차가 특별히 화재에 더 취약하다고 볼 근거는 없어요.
전기차 화재는 발생보다 진압이 중요합니다. ⓒ 부산 강서경찰서
다만, 일단 큰 불이 났다면 전기차의 화재 진압이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단 열폭주가 발생하면 산소가 발생하며 가연성 가스를 뿜어내고, 구조 상 물을 뿌려도 배터리 내부를 직접 진화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10만 리터의 물을 뿌려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과장은 아닌 것이죠.
전기차 화재 대비 훈련 모습 ⓒ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더 안전한 전기차 시대를 위한 노력들
자동차 회사들과 배터리 제조사들, 소방 당국까지 이러한 전기차 화재에 대한 대응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어요.
먼저 소방 당국은 전기차 소화장비와 매뉴얼 개선에 힘쓰고 있어요. 현재로서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산소를 차단해 불을 끄는 ‘질식소화포’와 조립식 수조에 불이 난 차를 침수시키는 ‘조립식 소화수조’ 등 두 가지인데요, 여기에 최근 개발된 화학 소화탄도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매년 급격히 늘어나는 전기차 보급대수에 비해 전기차 전용 소화장비의 보급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기에 장비 보급을 확대하고, 충전 중 화재에 대비해 충전소에 자동 소화장치를 설치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어요. 또 전기차 화재를 단시간 최소한의 피해로 진압할 수 있는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일선 현장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현대차에 적용된 e-GMP 전기차 전용 플랫폼. ‘배터리 파손을 최소화하는 고강도 차체’와 ‘화재 시 배터리 팩이 분리되는 비상 분리 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 현대자동차
최신 전기차에는 첨단 설계가 적용된다
자동차 회사들도 화재 가능성을 줄이는 설계를 적용하고 있어요.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는 최신 전기차들의 경우 배터리 팩 주변의 차체 강성을 대폭 강화해 큰 충격에도 배터리 파손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되고 있죠. 아예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 팩이 분리돼 손쉽게 진화할 수 있는 장치도 연구 중이라고 해요. 또 소방 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전기차의 단면도와 화재 진압 매뉴얼을 제공해 수월한 화재 진압을 도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배터리 제조사들은 화재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신소재 개발을 위해 노력 중이에요. 화재 안전성이 뛰어난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성능을 개선해 리튬이온배터리를 대체하는 한편, 높은 에너지 밀도와 우수한 안전성을 고루 갖춘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죠. 이르면 2027년 즈음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가 예정되어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전기차의 화재 가능성은 ‘0’에 수렴할 수도 있어요.
전기차 화재, 경각심은 갖되 오해는 금물!
전기차 운전자들의 협조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에요. 화재 우려 등의 이유로 리콜 조치된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리콜에 참여하고, 배터리를 비롯한 주요 부품을 정비할 때는 반드시 지정된 정비소를 방문해 주세요. 또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119 신고 시 전기차라는 사실을 알리면 보다 신속한 화재 진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우려와 혼선은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맞이하며 피할 수 없는 성장통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유관기관과 제조사들의 노력을 통해 화재 위험을 없애야겠지만, 막연한 두려움으로 전기차를 기피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죠. 전기차 화재, 이제는 정확히 알고 예방을 위해 힘을 모을 때가 아닐까요?
필진 엘제이
자동차 전문기자 출신 콘텐츠 에디터.
전기 자동차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드립니다.